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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도, 최덕신, 대학 1학년

2009.08.29 00:45

조회 수:19079


imgres.jpg 졸업하고, 1년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갔던 대학 1학년때였습니다. 그 전해 겨울에 부모님이 이사를 계획하시고, 서울 인근의 여러군데를 알아보셨답니다.  20년 정도 한곳에서 살아오시다가 옆집에서 증축을 하신다고 하셔서 팔게 되고, 그 비용에 맞는 집을 알아보셨다는 군요. 저는 대입 시험을 진짜 코앞에 두고 있어서 전혀 신경쓰지 못했습니다. 시험보기 3일전날 이사를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인천행 전철을 타고 부천이니 어디니 돌아다니시다가 서울로 오시는 길에 힘들어서 잠깐 내렸던 곳이 개봉역이랍니다.  눈에 개봉역 앞에 있는 허름한 5층짜리 아파트가 보였고, 그래서 알아나 보자 하고 가셨다가 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인근에 몇 군데 교회를 다녀보시다가 정하신 곳이 개봉교회입니다. 성가대를 시작했습니다. 지휘자는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단기사병이었습니다. 가죽가방 하나에, 청바지, 마이클 잭슨이 입었을 것 같은 지퍼 많은 가죽점퍼도 자주 입고, 알고 보니까 토요일 교회에 와서 주무시고 주일오후에 집으로 가시더군요. ‘늘 찬송하면서’라는 복음성가집에 나오는 이름이 주보의 지휘자 이름과 같긴 했지만, 전혀 연관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몇 달 그냥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불편한 기도실같은 교회 지하실에서 자는 것보다 좁지만, 제 방에서 같이 자기도 했었고,, 그러다가 ‘아, 그 최덕신이, 이 최덕신이구나’라고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대학 1년은 신나게 놀았던 해입니다. 원래 전공 자체를 고등학교에서 다 배우고 대학을 간 이유도 있었겠고요. 동아리를 4개인가 들었었는데, 그룹사운드도 있었고, 탁구부 까지(고등학교때 선수생활을 해서) 가을이 되면서 교회 고등부 문학의 밤을 한다고 하더군요. 고등부 지휘도 하고 계시던 지휘자님에게 뭐, 도울 일이 있다면 이야기 하라고,, 대학 그룹사운드에서 음향엔지니어도 하니까~  그 이야기를 들으신 지휘자님이, 마침 주찬양이 처음으로 장비를 부산에서 주문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혹시 같이 사역할 마음이 있느냐? 그게 지금의 궤도가 정해진 때인것 같습니다. 모임하고 몇번 집회를 따라 다녔습니다.  붐박스라고 불리는 카세트가지고 다니면서 10여명 정도가 이곳 저곳으로 몰려다니면서 사역을 했었지요. 장비가 없으니까 당연히 그냥 저는 카세트 플레이 버튼 눌렀다가 테입 바꿨다가,, 그랬고.  음향장비야 교회것을 쓰니까 아무 만질것도 없었습니다.


어디 파주쪽인가로 가기 전날이었던 것같은데, 덕신형 집에서 1박을 했었습니다. 성북구 어딘가 산위에 있던 아파트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면서, 지냈었죠. 



벌써 23년이 지나버렸습니다. 20살 팔팔한 나이가, 이제는 중학생 학부모가 되어있고, 덕신형도 50을 바라보고 있죠. 그동안 많이도 티격태격하고, 또 만나서 사역하고, 많이 그리워하는 사이가 된것 같습니다.  뭐, 볼것 안볼것 다 본 사이들이라서.. 가족끼리 같이 살기도 했었으니까요. 


다윗이 왕에 오르기 까지의 시간들을 요즘 유심히 봅니다. 오래전에 하나님이 찜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때를 기다리는 것을 보게 되는군요. 23년, 길면 긴 시간들이고, 또 그동안의 계획에서 어떤 방향으로 훈련시키셨는지도 봅니다. 덕신형이나 모든 지체들도 다 그럴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진 계획들에 대해 기대해봅니다. 시간이 지나 엄청나게 변해있을 또 하나의 출발점이 지금일 수도 있으니까요.



2009년 8월 27일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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