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든 것의 시작

Author
장 호준
Date
2025-01-17 14:49
Views
17
우연히, 특별한 일 없던 새파랬던 시절 친구따라 가본 곳이 녹음실이었다. 88년이었나? 맞네, 그때였구나. 그 친구 이름이 뭐였지? 생각 안나네.. 하여간 어떤 목표가 있어서 갔던건 전혀 아니었고, 아니 전혀 그런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다. 팝이나 가요 테입을 사도 전혀 크레딧에 눈이 가지 않았고, 그냥 좋아하는 음악 듣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강남 어디엔가 건물 지하에 스튜디오가 있었다. 밖에선 전혀 뭐라 써있지도 않았는데, 두꺼운 문 열고 들어가니까 신세계가 있었다. 커다란 믹서의 수백개의 불빛이 계속 나를 뚤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 왔니?”
믹서 오른쪽 끝쪽에 리모트(나중에 뭔지 알았다)앞 의자에 앉아서 한 손에 악보 들고, 한 손을 받침대 있는 리모트에 대고 있던 친구의 사촌 형이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네, 형님.. 잘 지내시죠?”
“어, 잠깐,, 저기 소파에 앉아 있어”
콘솔 앞에 앉아계신 기사님은 뭔가 열심히 만지고 계셨고, 눈치 보던 사촌 형님은 딱 봐도 그다지 뭔가 비중있는 일을 하고 계신건 아닌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 뭔지 절대 이해도 안가고 뭔지도 모를 상황을 지켜보다보니, 다들 끝났는지 부쓰에 계시던 연주자들도 나오고, 물론 그 분들이 문열고 나오시는거 보고야 그 쪽에 방들이 있는지 알았다. 오로지 내 눈은 수백개의 불빛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완전 우주선 조종석과 같이,, 스타워즈 한솔로의 우주선 조종석보다 훨씬 더 복잡한 그게, 날 사로 잡았다.
휴학을 한 상태로 군대 영장만 기다리던 때라, 다음날부터 그 녹음실로 출근했다. 당연히 장비는 절대 손도 못대고, 재떨이 비우고, 화장실 청소하고, 걸레질 구석 구석 열심히 하고, 하다못해 드럼 부쓰의 드럼에 끼어있는 담배찌꺼기까지 매일 매일 깨끗하게 닦았다. 다행히 중학교때부터 라디오 조립에 세운상가 들락거리며 갈고 닦은 초급 전자기술이 뭔가 도움이 되는것 같기도 했다. 케이블 불량정도 수리는 쉬웠고, 콘솔 매뉴얼 뒷장에 있는 신호흐름도도 얼추 이해가 가는것 같았으니까.
물론, 근본적으로 답답한 부분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였다. 일단 아무리 봐도 콘솔자체가 이해가 안갔다. 왼쪽에 24채널이 있는것은 입력부인거 같은데, 기사님이 녹음하는거 보면 오른쪽에 12개씩 위, 아래에 있는 채널을 만지시고, 보조 기사로 일하시는 친구 사촌형님도 제대로 모르시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 저녁에 뭐하니”
“네?, 특별한 일 없는데요” 패치 케이블을 뽑으시던 기사님 이야기에 대답해드렸다.
“운전 할 줄 알지?”
“네.. 초보는 아닙니다”
“그래,, 그럼 이따 나하고 어디 좀 갔다 오자”
“네”
운전을 못하신다는 친구 사촌형 덕분에 그렇게 기사님 모시고 그날 부터 틈틈히 서울 시내외의 녹음실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하루 3프로 이상 빽빽하게 스케쥴이 있는 기사님은 차에 타자마자 골아떨어지시고, 게다가 밤에는 관계자들과 술도 얼큰하게 하시는 것 같았으니까..
녹음실 일 배우러 들어와 노가다만 뛰던 젊은애에게 운전기사일까지 시키신게 미안하신지, 기사님이 녹음 취소가 있는 날은 조금씩 가르쳐 주시기 시작했다.
“회로도 볼 줄 알지?”
“회로까지는 잘 모르구요. 그냥 신호흐름 정도는 볼 줄 압니다”
“그래,, 그 정도 해도 돼.. 수리할 부분은 업체 부르면 되니까”
“자, 저기 라디오 들고 부쓰들어가서 켜놓고, 414 하나 앞에 설치하고 와라”
“네”
다행히 사촌형님이 틈날때마다 케비넷에 있는 마이크 이름 외우라 시키신게 있어서 헤매지 않고 설치할 수 있었다.
“자, 부쓰 몇번에 꼽았니?”
“네, 11번에 꼽았는데요”
“그럼, 여기 콘솔의 채널 4번에 연결해서 멀티녹음기 11번 트랙으로 들어가게 해봐라”
“네”
속으로는 약간 떨리지만, 뭐 그리 어려울 것은 아니었다. 패치 꼽고, 컨덴서 마이크니까 팬텀파워도 넣고, 왼쪽의 입력채널의 입력 페이더도 올리고, 어사인에서 11번으로 가게 지정도 하고, 멀티녹음기도 입력으로 해놓고,,
근데, 소리가 안나온다.
아, 콘솔의 모니터 섹션을 안바꿨구나…
가만 보니 기사님도 제대로 완벽하게 아시는 것은 아닌것 같았다. 물론, 그래도 요즘말로 절대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넘치시는 그런 분이셨다.
영장은 추운 겨울이 되어서 별안간 나와버렸고, 운전수가 없어진 기사님이 제대하면 고민하지 말고, 바로 와라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입대했다. 요즘은 군대에도 음향병이 있고, 만만치 않은 장비들이 있기도 하고, 어디 산골 부대 교회에 가도 믹서가 있지만, 그때는 오로지 새마을 앰프라 불리던 그 정도의 시스템이니, 그냥 주어진 보직에 충실하면서, 혹시 모르니까 영어 공부만 열심히 하며 그렇게 군대시절을 보냈다.
제대하고 복학을 하냐 마냐 부모님과 열심히 고민하다가 겨우 설득을 시켜서 유학길을 떠났었다. 아버지가 이왕 가는거 한국사람 없는데 가서 죽기살기로 영어 공부 먼저 하라고 해서 진짜 인구 만명정도 되는 촌 동네에, 오로지 동양사람은 나 혼자하고 내과 의사인 한국분 한 가정 있는 그런데서 어학을 하고, Music Production 학사 학위를 받고난 다음 다행히 교수님 추천으로 LA 헐리웃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인턴을 1년 하고 돌아왔다.
이미 29살이 된 상황에서 들어온 98년 국내의 상황은 백만장이 팔리는 음반이 흔할 정도의 호황이었지만, 내 이력서는 그렇게 쉽게 받아드려지는 데가 없었다. 운전기사 노릇 열심히 해드렸던 그 기사님은 따로 아예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려서 사장님으로만 일하시고 계셨고, 거기게 한 두달 다녔지만 뭔가 텃세같은 것 때문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메인 기사님이 일본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이고, 그 분의 후배들이 그 아래에서 유학 안하고 밑바닥에서 뒹굴며 도제식으로 배워 올라오신 토종 기사님들과 모종의 기싸움도 있었다. 한 5년의 미국 생활이 성격도 변하게 만들었는지, 그렇게 같이 섞여 지내기도 참 어려웠다. 나도 예전에 쫄병시절 다 보냈었는데, 그래서 짠밥으로 치면 좀 되지만, 그냥 에이 그래 너네들끼리 잘 해라.. 그렇게 되어 버렸다.
기본적으로 기술적인 면에서 부딪치는 부분도 많았다. 뭐, 이야기 하기도 좀 그렇지만,, 하여간 그렇게 두달정도의 시간을 보내다 모 음반사의 스카웃 제의로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기획사라는 것이 생기기 전의 시절이니까, 대부분 음반은 음반사의 주도로 나오는 상황이었고, 그러니까 음반사 내의 작업실이 더빙하고 편집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투자를 받으셨는지 스튜디오를 회사내에 꾸미시게 되었고, 다행히 설계 부분부터 같이 참여해서 일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꿈의 스튜디오를 차리려고 이것 저것 그려보고, 그러다 귀국해서 그 때 아버지께 사업자금 부탁해 차렸다면 분명 다 날려먹었을꺼다. 사장님 되신 그 기사님 보니까 그렇게 답이 나왔다. 대강 생각해봐도 공사비에 믹서하고 장비, 피아노에 드럼, 가구,, 다 해서 3억은 들어가는데, 사장님 보니까 계속 수금하러 다니고, 영업하고,, 골치 아프시다 하시더라고,, 보니까 80년대에 서울에 있던 녹음실 숫자와 비교해보니 너무나 많이 늘어난 것이 녹음실이었었다. 당연히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니~~
그래도 메이져인 음반사 정식 직원에 외부 녹음 렌탈에서 들어오는 기사비, 그렇게 해서 나의 30대는 괜챦은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만 찾으시는 아티스트와 기획사, 음반사가 늘어나면서 자연히 10년 동안 모았던 것과 몇가지 리스끼고 그렇게 사장이 되어버렸다.
Total 0

Total 76
Number Title Author Date Votes Views
76
76. 녹음실에서 연습을 하면,, 나야 땡큐지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26
장 호준 2025.01.17 0 26
75
75. 이런 저런~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7
장 호준 2025.01.17 0 17
74
74. 콩딱, 콩딱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8
장 호준 2025.01.17 0 18
73
73. 소극장 공연,, 머리를 올린다~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21
장 호준 2025.01.17 0 21
72
72. 스튜디오의 일상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7
장 호준 2025.01.17 0 17
71
71. 왜 콘솔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8
장 호준 2025.01.17 0 18
70
70. 단순노동, 그러나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4
장 호준 2025.01.17 0 14
69
69. 업계에 벌어진 황당한... (실화)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8
장 호준 2025.01.17 0 18
68
68. 4가지라..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5
장 호준 2025.01.17 0 15
67
67. 가까운 미래~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3
장 호준 2025.01.17 0 13
66
66. 접지 쫌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2
장 호준 2025.01.17 0 12
65
65. 인생의 이야기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3
장 호준 2025.01.17 0 13
64
64. 우울증은.. 약?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4
장 호준 2025.01.17 0 14
63
63. 튠,, 튠,,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2
장 호준 2025.01.17 0 12
62
62. ㅋㅋ
장 호준 | 2025.01.17 | Votes 0 | Views 12
장 호준 2025.01.17 0 12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