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술을 가진 예술가는 그렇게 흔하지 않거든, 쉽게 만들어지지도 않고,,

Author
장 호준
Date
2025-01-1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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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피곤하다. 박박 우기는 사람들과의 끝없는 대화도 그렇고, 스케쥴때문에 죄송하다 하며 야간 믹싱 강행하는 아티스트도 그렇다. 밤 믹싱은 맥주 몇 캔 비우고 하는것과 똑같다며 반드시 다음날 후회하지 말라던 오래전 교수님의 충고도 있지만, 이 놈의 세션파일이라는 것 때문에 그 개념도 바뀌는 것 같다. 예전 테입기반의 작업에서는 기껏해봐야 페이더 오토메이션이니까, 그렇게 강행하고 후회하는 아티스트들이 나중에 재작업의 부담을 더 크게 가지긴 했었는데, 요즘은 그냥 “감독님, 킥이 조금 더 커도 될것 같구요. 보컬은 괜챦고, 뒤에 백보컬 라인만 좀 더 들리게~~” 이래 문자날리면 그냥 뚝딱해야하니까, 뭐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페이더에 테입 붙이고 금 그어가면서 하던 믹스도 추억이다. 복잡해지만, 가수에 편곡자까지 콘솔에 들어붙어서 명령에 따라 올리고 내리고, 24트랙의 한계로 계속 핑퐁하고, 그러다 보니 원본이 없어지고,, 하긴 한 때 대세였던 가수도 돈이 없어 녹음실 멀티테입 대여해 녹음을 해 데뷔했는데 대박이 나서, 재 믹싱을 할려고 녹음실 가봤더니 이미 테입은 다른 가수의 작업이 몇번 되어 있었다고, 일단 돈이 있으니까 다시 세션 불러 녹음 했지만, 그 감동이 안살아나 포기하셨다는 전설도 있다.
“감독님, 재미있네요.. 저도 블레이드에딧은 전설로만 들었는데”
인턴이 옅은 미소를 띠며 한 마디 한다.
“그러게,, 아마 90년대 후반 이후로는 없어졌겠지.. 프로툴즈가 대세가 된 다음에는,, 아 ADAT에 들어온 다음에도 그랬었겠다. 뭐, 자를 수가 있어야지..”
“오,, ADAT,, 테입인데 똑같이 편집이 안되나요?”
“어,, 그게 디지털인데다가 경사각도로 데이터를 기록하니까 아예 원천적으로 안되지.. 디지털이기 때문에도 그렇고”
“아.. 하여간 프로툴즈 때문에 많이 변했죠?”
“그럼,, 옛날 리버스 리버브같은거 쓸려면, 아주 웃겼다.”
“리버스 리버브요? 리버브 거꾸로 들리게 하는거?”
“그치,, 신호가 나오기도 전에 그 효과가 들리게 하는거니까.. 마치 심벌롤하는것 처럼, 그거 할려면 채널 하나 비워놓고, 테입 거꾸로 앞뒷면 걸어놓고 리버브잡아 비운 채널에 녹음했지”
“아,, 그렇게 해서 나오게 했군요”
“요즘이야 파형 그냥 뒤집으면 되니까,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요즘 친구들은 모르는 것들이 제법 된다. 120BPM으로 달려가는 16분 음표 킥 싱코페이션 ‘다닥’친 것에서 땡긴 ‘다’만 지워달라는거 아주 자연스럽게 탁 펀치아웃해드리고 우쭐해하던 거, 뭐, 아니 우리 녹음실에는 그래도 자연스럽게 보지만, 출근해서 문 열면 수 많은 콘솔과 아웃보드의 불빛이 딱 나를 기다리는 그 감동은, 콘솔 없이 몇개의 프리앰프와 아웃보드, 꺼져있는 컴퓨터 가지고 일하는 요즘 대부분의 녹음실에선 볼 수 없는 그림일거다.
“감독님”
“왜?”
몇 년전부터 부르기 시작한 감독님이라는 호칭이 이젠 아주 괜챦게 들린다. 사실 첨 부터 ‘기사님’이라는 호칭이 참 맘에 안들었었다. 우스게로 ‘기사도’라는 서비스 정신을 말하기도 했지만, 기술에 국한된 엔지니어의 호칭보다는 뭔가 아티스트적인 느낌이 더 있는 직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꺼다.
“저도 나이가 이제 몇년뒤면 30을 바라 보는데,, 요즘 같은 때에 어떨것 같습니까? 이거 계속 해야할까요?”
“글쎄, 나도 그렇고, 아마 누구도 정답을 가지고 살아가진 않지. 계획대로만 된다면 참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되나.. 어떻게 보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해서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인생이지 않을까 싶네.”
커피 잔이 비워가는거 눈치껏 한 잔 더 따른다.
“넌, 잘 할꺼야.. 상황 파악도 잘하고, 사실 그게 현재 너 위치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 같거든, 뭐, 곧 인턴 딱지도 때줄꺼고, 그러면 정식 직원으로 일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는게 더 큰 의무라는게 있다는거 너도 잘 알꺼고, 더는 트랙 실수로 지워먹어도 실수였다고만 말하기 어려운 시간이 오겠지.ㅎㅎ 겁나지?”
엇 그제 잠깐 미팅때문에 나가면서 트래킹 하라 했더니 그런 일이 벌어졌었다. 다행히 맘 좋은 세션께서 그냥 잘 넘어가주셨다고..
“지금 하는 것처럼만 하면 잘 할꺼야.. 기술이야 시간이 걸려, 앞으로 5년, 10년, 15년 지나가면서 했던 작업들 보면 답이 나오게 된다. 나도 한 10년 정도될때 부터 했던 작업들이 요즘 들어도 좀 들어줄 만하다. 그 전에 같이 했던 아티스트들에겐 좀 미안한 맘이 있지. 뭐, 다 확인받아 진행한거니까, 100프로 내 책임은 절대 아니다만..ㅋㅋ”
“네~휴~”
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좀 한 숨이 먼저 나오나 보다.
기술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뭔가 예술적인 창조를 하는 일이 이쪽 일이라 자부하고 있고, 그렇기에 예술적인 면만 가지고 혼자 마무리 할려고 노력하는 음악인들에게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기회가 있을때 마다 해주긴 하지만, 이게 참 어려운 일이긴 하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깎는 공구 다루는 기술을 뛰어넘어서 그냥 대리석 속에 보이는 다비드상의 모습만 보았다면 그가 과연 그런 예술가가 되었을 수 있을까?
“많이 민감해져야해.. 물론 민감함이라는것이 대중성이라는 객관성 안에서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는거겠지만..”
“네,, 네?”
“엔지니어가 엄청 예민하고 민감하게 작업을 해서 완성도 1000%에 이르는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게 객관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다. 쉽게 말해서, 너 귀에 들리는 아주 끝내주는 스네어 드럼의 하이톤이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듣는다면 별 의미가 없다라는 거지. 난 그래서 그렇게 하이엔드급의 모니터 환경이나 오디오 시스템을 잘 활용을 안해.. 그럴 돈도 없고,ㅎㅎ”
“아, 그래서 감독님 차의 오디오도 그냥 기본이군요? 제 차만해도 뭐 막 바꿨는데..”
“그래,, 엔지니어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그거라 나는 생각한다. 내 믹스를 듣는 사람들이 아주 천차만별의 오디오로 듣겠지. 내가 기본은 만들어 줘야 다들 알아서 원하는데로 들을 거니까.”
“아, 그럼 일반인들은 주관적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그치, 그러니까, 각각의 오디오에 이큐가 있고, 원하는 퀄리티를 세팅에서 만들려고 하는거지”
오늘도 이 친구는 학교에서 못배우는 중요한 레슨을 배워가는 것 같다.
“삐리리~”
“네, 네, 네~, 아, 믹싱을 그냥 저하고 하신다구요? 알겠습니다. 수고 하셨네요. 그럼 스케쥴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만”
기획사에서 뉴욕 친구의 다른 레퍼런스를 들어보니까 좀 맘에 안든다는 결정을 내리셨단다. 느낌에는 어쩌다 한 두개 잘 나온거 들어봤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이따금 20대 엔지니어들의 작품에서 나오는 경우일 수도 있고, 또 하나는 아마 가격면에서 후려친 경우일 수도 있다. 일이 좀 줄어든 유명 엔지니어들 가운데, 한국이나 일본, 중국 등의 시장을 노리고 그렇게들 한다고 하더니, 이 경우도 그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
뭐, 다들 점점 어려워질 거라 말한다. 상당 수의 편곡자나 연주자들이 자기 작업실에서 대부분의 작업을 끝내버리고, 그 곡들이 챠트를 휩쓸고, 이미 그렇게 변해버린 시장에서 스튜디오나 엔지니어들이 할 부분이 얼마나 있을것 같냐라고도 하지만, 분명 앞으로 음악시장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히 있다. 왜냐면, 기술을 가진 예술가는 그렇게 흔하지 않거든, 쉽게 만들어지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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